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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독재.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반복되는 권력욕. 영화는 이 어려운 개념들을 시골 학급에서 벌어지는 120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오래전 영화이지만 지금도 뉴스 속 정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영화 속 5학년 2반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줄거리와 정보를 살펴보고 감상평을 남기겠습니다.
줄거리
학원강사 한병태(태민영)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었던 최 선생(신구)의 장례식에 참석해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반장이었던 엄석대(홍경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서울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 온 5학년 한병태(고정일). 학급 반장 엄석대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왕처럼 군림합니다. 병태는 그런 석대에게 저항하지만 모든 것은 석대의 뜻대로 흘러가고 자신 있었던 공부마저 석대에게 뒤처집니다. 석대에게 청소 검사를 받아야만 하교할 수 있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병태는 더 버티지 못하고 그에게 항복합니다. 병태가 다른 학생들처럼 복종하자 석대는 병태에게 여러 특권들을 주고 병태는 그런 생활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어느 날, 병태는 석대가 공부 잘하는 다른 학생과 시험지를 바꾸는 부정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선생님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합니다. 하지만 석대가 주는 권력의 달콤함을 포기할 수 없어 입을 다뭅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6학년이 되어 서울에서 온 김 선생(최민식)이 담임이 됩니다. 김 선생은 반장 선거에서 석대가 만장일치로 표를 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전교 1등임에도 불구하고 쉬운 문제를 못 푸는 점, 학생들이 교사가 아닌 석대에게 모든 것을 검사받는 분위기 등에 석대를 수상히 여깁니다. 결국 석대의 부정시험이 들통나고 김 선생은 석대를 매질한 후 학생들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그동안 석대에게 당했던 일들을 털어놓다가 석대를 비난하고 욕하기 시작합니다. 석대는 교실에서 뛰쳐나가고 그날 밤 교실에 불을 지른 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장례식에 참석한 김 선생은 국회의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가 권력에 아부하는 모습에 병태는 씁쓸해집니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석대는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가 보낸 화환으로 그의 삶을 추측해 볼 뿐입니다.
정보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92년 8월에 개봉한 드라마 장르의 영화입니다. 제1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원작입니다. 1959년 독재 정권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시기의 한국 현대사를 시골 초등학교 학급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으로 소설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영화 역시 9점 대의 매우 높은 평점을 받았습니다. <구로 아리랑(1989)> <영원한 제국(1995)>으로 알려진 박종원 감독의 작품입니다. 홍경인, 고정일, 최민식, 태민영, 신구, 김혜옥 등이 출연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엄석대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열린 결말을 보여줍니다. 3회 춘사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기술상, 남자 우수연기상, 각색상, 편집상, 13회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특별상, 31회 대종상 심사위원특별상, 조명상, 편집상, 2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 작품상, 감독상, 특별상, 38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감상평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히 훌륭합니다. 특히 엄석대 역을 맡은 홍경인은 연기 천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시골 마을의 학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권력을 쟁취한 자와 그 힘에 굴복하는 자, 대항하는 자가 어우러진 어른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깨우친 지식인이라 생각했던 김 선생도 정치판에 뛰어들어 결국 권력에 순응하는 자가 되어버려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선생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고 석대가 있어 편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현실에 안주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김 선생 앞에서 비난당하고 욕설을 들은 엄석대가 견디다 못해 교실에서 뛰쳐나가는 장면은 명장면입니다. 병태는 차마 석대를 비난하지 못하고 잘 모른다며 얼버무리는데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조금 부족해 보이는 영팔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입니다. 그동안 석대가 무서워 그의 잘못된 행동을 묵인해 놓고 돌변해 석대를 비난하는 학생들에게 영팔은 '너희들도 나쁘다'라고 외칩니다. 병태는 전학 온 초반에 석대의 독재에 저항하는데 그때 지지해 주었던 것도 영팔이고 시간이 흘러 병태가 석대에게 굴복하자 실망스러워한 것도 영팔이입니다. 지능이 조금 모자라 보이지만 당당한 인물입니다. 엄석대의 잘못을 고발할 때 누구보다 강하게 비난한 만순은 부동산 졸부가 되어 나타나는데 농부가 된 영팔이와 비교해 보면 왠지 어울리는 직업 같습니다. 석대가 교실에 불을 지른 행위는 마치 자신이 건설한 왕국을 자기 손으로 없애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된 석대가 또 어딘가에 새로운 왕국을 얼마나 건설했을지 궁금해집니다.